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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말씀과경배

작성자 서울제일침례교회
제목 그리스도인과 술
작성일자 2016-03-03
그리스도인과 술
 
“재난이 누구에게 있느냐? 슬픔이 누구에게 있느냐? 다툼이 누구에게 있느냐? 재잘거림이 누구에게 있느냐? 까닭 없는 상처가 누구에게 있느냐? 붉은 눈이 누구에게 있느냐? / 오랫동안 포도주에 머무는 자들에게 있고 섞은 포도주를 구하러 다니는 자들에게 있느니라. / 너는 포도주가 붉거나 잔에서 제 빛깔을 내거나 스스로 똑바로 움직일 때에 그것을 바라보지 말라. / 마침내 그것이 뱀같이 물고 독사같이 쏘나니 / 네 눈은 낯선 여자들을 바라볼 것이요, 네 마음은 비뚤어진 일들을 말하리로다. / 참으로 너는 바다 한가운데 누운 자 같으며 돛대 꼭대기에 누운 자 같으리니 / 네가 말하기를, 그들이 나를 쳐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나를 때려도 내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였도다. 내가 어느 때나 깰까? 내가 또 여전히 그것을 구하리라, 하리라.”(잠 23:29-35) (Who hath woe? who hath sorrow? who hath contentions? who hath babbling? who hath wounds without cause? who hath redness of eyes? / They that tarry long at the wine; they that go to seek mixed wine. / Look not thou upon the wine when it is red, when it giveth his colour in the cup, when it moveth itself aright. / At the last it biteth like a serpent, and stingeth like an adder. / Thine eyes shall behold strange women, and thine heart shall utter perverse things. / Yea, thou shalt be as he that lieth down in the midst of the sea, or as he that lieth upon the top of a mast. / They have stricken me, shalt thou say, and I was not sick; they have beaten me, and I felt it not: when shall I awake? I will seek it yet again.)
 
 
   구약에서 술 음료는 율법에 구체적으로 금지된 것이 없지만 그 위험성과 무서운 결과에 대한 경고의 사례가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cf. 창 9:20-27 / 창 19:30-37). 유월절 사건을 겪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법으로 술의 원료인 누룩에 대한 철저한 금지와 경고가 주어졌다(cf. 출 12:15, 19, 13:7, 34:25; 레 2:11, 6:17, 10:12 / ♠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 경우 - 레 23:17; 암 4:5 누룩과 같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드려짐을 예표). 잠언서와 같은 지혜서에서는 술의 위험성과 해악성(害惡性)을 더 강력하게 기록하고 있다. 계속해서 신약에서도 누룩과 술은 부정적인 의미와 경고의 대상으로 제시되었다(마 13:33, 16:6, 11, 12; 막 8:15; 눅 12:1, 13:21; 고전 5:6, 7, 8; 갈 5:9; 엡 5:18; 벧전 4:3; 계 17:2 / 마 24:49; 눅 12:45; 살전 5:7).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종합해보면 분명히 하나님은 술과 그 원료인 누룩을 싫어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약에서는 제사장과 백성, 왕과 백성이 구별되었지만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의 완성으로 인해 이제 믿는 사람은 모두 제사장이고 왕이 되었다(벧전 2:9; 계 1:6, 5:10, 20:6). 주님과 함께 통치할 통치자가 되었다(딤후 2:12). 신분이 왕, 통치자인 사람은 술을 먹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 심지어는 사람을 취하게 하여 판단을 흐리게 하는 술을 바라보는 것 까지도 금지되었다(잠 31:4-5 “오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왕들에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왕들에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독주를 마시는 것은 통치자들에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 그들이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고난 받는 자들 중의 어느 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할까 염려하노라). 이러한 술은 망할 사람과 삶의 곤궁함과 고통 때문에 마음이 무거운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이다(잠 31:6-7 ”독주는 망하려는 자에게 주고 포도주는 마음이 무거운 자들에게 주라. / 그가 마시고 자기의 빈궁함을 잊어버리며 다시는 자기의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게 할지니라.”). 물론 이 말씀은 권면의 말씀이 아니라, 풍자적으로 술의 위험성과 해악을 더 강력하게 경고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늘의 소망이 없는 사람은 삶의 곤궁과 고통을 어떻게 달래는가? 술로 달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곤궁함을 이기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cf. 잠 10:4, 12:11, 20:13, 22:29, 24:30-34, 28:19),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하늘의 소망을 묵상한다(cf. 마 10:28; 롬 8:17-18, 28, 32; 고후 4:16-18; 벧전 1:3, 7, 13, 2:19-21, 4:12-14, 19 ...).
 
    세상은 술을 적당히 먹으면 괜찮다고 가르친다. 적당히 먹으면 건강에도 좋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누가 적당히 먹을 수 있는가? 술의 중독성, 미혹성(迷惑性)을 자신 있게 피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성경에서 금지한 ‘술 취하지 말라’는 경고는 술을 조금 입에 대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한 잔 먹어서 취하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합당하지 않은 악(惡)은 그 성격이나 모양, 형식까지도 금해야 한다(살전 5:22 “악의 모든 모양을 삼가라”).
 
    그리스도인의 음주를 허용하는 근거중의 하나로 인용되는 디모데전서 3:8은 교회의 집사에게 술을 먹어도 좋다고 허용하는 말씀인가? 그렇게 볼 수 없다. 목회자[감독, 장로]와 집사는 기능과 임무에서 차이가 있다. 감독은 신분상 반드시 술을 철저하게 금지해야 한다(딤전 3:3a). 또 헌신하고 전임을 하는 감독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집사는 사회에서 생업을 하면서 교회를 섬기는 일꾼이다. 사회에서 생업을 하면 감독처럼 철저하게 술을 다룰 수 없다. 이것은 술을 먹어도 좋다고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두 직분인 감독과 집사의 기능의 차이를 인정하는 구절이다. 감독은 엄격하게 예외 규정이 없어야 하지만 생업에 종사하는 집사는 감독처럼 엄격한 규정을 정할 수 없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wine을 술로 번역하였지만 반드시 술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당시는 포도즙도 wine이었고 알코홀 성 음료인 포도주도 wine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소위 ‘사교 술’(social drinking)을 즐기거나 지금의 와인(wine), 맥주를 술 종류에 포함시키지 않고 일종의 음료수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구절을 최대한 이용한다. 이들은 만약 이 wine이 포도열매에서 나오는 포도즙이라면 감독[목회자]은 포도즙을 입에도 대지 말라고 하는 것이 되므로 여기서 와인은 포도주 술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감독에게는 술이 금지되었지만 전임사역자가 아닌 집사는 술을 많이 먹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만 해석할 수 없다. 여기서 wine이 여전히 포도즙일 가능성도 있다. 하나님께 삶의 모든 것을 복음사역과 교회를 위해 헌신한 감독은 필요하면 죄가 아니더라도 복음의 간증을 위해 철저한 절제가 요구되었다. 바울 사도는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간증과 다른 지체들을 위해서 필요하면 고기 먹는 것은 물론 포도즙을 마시는 것까지 절제하는 것이 선한일이라고 하였다(롬 14:20-21; 고전 8:7-13).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분리되었다(separated)고 말하고 있다(롬 1:1). 여기서 분리는 하나님의 도구로 온전히 성별되었다는 뜻이다. 구약에는 이스라엘에 나실인(나사르 사람, Nazarite)이 있었다. 구약의 나실인과 신약의 사도나 복음전도자가 같을 수 없지만 하나님의 도구로 온전히 구별되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나실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분리하여(separate)하여 주님께 드려야 했다(민 6:1). 나실인으로 구별된 사람은 포도주나 독주는 물론 포도즙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생긴 식초와 포도즙이 금지되었고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고, 자신을 구별하는 동안은 포도나무에서 나는 것은 씨에서부터 껍질에 이르기 까지 먹지 말라는 명령이 주어졌다(민 6:1-4).
 
   또 어떤 이들은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포도 술을 만들어 주신 사건(요 2:1-10)을 그리스도인의 포도주 음용의 근거로 삼는다. 한 마디로 예수님을 위선적인 하나님으로 만드는 주장이다. 그 잔치에서 주님께서 물로 만드신 것이 포도주라는 것은 사람들의 통념적인 관념이외는 성경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사람들은 혼인 잔치이므로 사람들의 기분을 즐겁게 해주는 술이 반드시 있었을 것으로 단정한다. 물론 당시에 술을 먹는 잔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람들을 취하게 하는 술을 그렇게 많이 만들어 주셨다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상식을 더 믿는 것이다. 또 하나, 만약 주님께서 만드신 것이 포도즙이 아니고 술이었다면 잔치가 깊어질수록 술을 먹은 사람들은 알코홀의 영향으로 자신들이 마시는 음료의 질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게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잔치가 끝날 무렵에도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은 음료의 질을 분명하게 판단하였다(요 2:8-10). 그것이 술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술은 어떤 모양, 형태로도 합당하지 않다. 어떤 논리와 이유로도 거룩한 신분인 하나님의 자녀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술은 어울릴 수 없다. ‘건강을 위해 조금씩 먹으라, 몸에 좋은 약술이다’라는 세상의 속삭임에 유혹되지 말라. 건강을 위해서 반드시 술을 먹을 필요 없다. 술이 치료약이 되는 병, 술을 먹으면 낫는 병은 없다. 어떤 이는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건강을 위해 포도주 술을 조금 먹으라고 권면했다고 주장한다(딤전 5:23 “너 이상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있는 병을 위하여 wine을 조금 쓰라). 여기서 wine을 개역성경이나 다른 번역본은 ‘포도주[酒]’로 번역하였지만, 킹제임스 흠정역은 wine을 포도즙으로 번역하였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먹으라고 권면한 것은 포도즙인가? 포도 술인가? . 만약 전임사역자였던 디모데가 포도즙을 자유롭게 먹고 있었다면 왜 그가 '포도즙대신 포도주를 먹으라'고 하지 않고, '물 대신 술을 먹으라'고 하였을까? 그 때의 상황은 젊은 목회자 디모데는 ‘물’을 주 음료로 먹고 있었는데 위장과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디모데는 포도즙을 먹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목회직의 간증을 조금이라고 훼손하지 않기 위해 포도즙을 먹지 않고 물만 먹었는지 모른다. 이때 사도 바울은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디모데에게 물대신 위장에 좋은 포도즙을 약으로 먹어보라고 권면한 것으로 보인다.
    술로 발효되기 전 포도나무의 열매에서 나온 천연즙[juice]은 건강에 좋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위장기능 강화에 좋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바울 사도가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위장 건강을 위해 카운슬링을 한 것은 몸에도 좋고 위장에 좋은 포도즙이었다. 그러면 바울이나 디모데가 평소에는 포도즙을 먹지 않았다면 술이 아닌데 왜 먹지 않았을까? 천연 생 포도즙과 포도즙이 발효되어 포도주가 되는 경계가 모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발효시키지 않아도 기온, 환경, 용기에 따라 포도가 자연적으로 발효될 수 있다. 완전한 포도 술이 되지 않았더라고 그런 향이나 맛이 나는 알코홀 음료의 경계 직전이나 경계상에 있는 포도즙이 있을 수 있다. 바울과 디모데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나사르 사람(a Nazarite)에게 포도주, 포도즙은 물론 심지어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민 6:1-4; 삿 13:7)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 왕이나 통치자는 포도주를 바라 보지도 말라(잠 23:31)고 하신 명령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 신약교회의 전임사역자는 포도주를 조금도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딤전 3:3)을 순종하기 위해 그렇게 신중하게 행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진정으로 거듭났다면 술을 먹는다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간증은 훼손되고 자칫 복음의 빛을 가릴 수 있다. 전임 사역자는 더욱 그러하다. 전임사역자를 포함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어지럽고 부패한 세상에서 항상 맑은 정신으로(sober, 취하게 하는 술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상태) 깨어있어야 한다(cf. 살전 5:6, 8; 딤전 3:2, 11; 딛 1:8, 2:2, 4, 6; 벧전 1:13, 4:7, 5:8). 그러나 술 취하지 않더라도 이른바 ‘건강을 위한 술’ 혹은 ‘약술‘이론을 받아들이거나 소위 ’가벼운 사교음주’(social drinking)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리스도인이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육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마시는 것이 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지금 세상은 술을 권하는 세상이다. 술 산업이 엄청나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와인 산업이 대단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가까이 있는 대형 마트에 가보면 산더미 처럼 진열되어 있는 와인 코너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요사이는 술을 건강과 의학에까지 연결시켜 대중매체를 통해 와인[포도주]이 건강에 좋다는 선전을 많이 한다. 미디어 광고뿐 아니라 학계까지 동원하여 학술적으로 와인이 사람의 심장에 좋다는 등의 연구발표를 많이 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포도주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문 발표도 있다.
    
    그리스도인이 사실 건강을 위해 술을 먹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술 먹는 것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 먹으려고 내세우는 논리나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에서 주장하는 건강 논리나 사교 논리 아래 술 먹는 것을 정당화하지 말고 차라리 정직하게 먹고 싶어서 먹는다고 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술 먹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임을 알지만 그것을 통제할 힘이 없으면 솔직하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주님께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술을 멀리하게 할 힘을 주실 것이다.
    어떤 사람이 끝까지 논리를 내세워 술을 마시려 한다면 그것을 막을 길은 없다(cf. 고전 14:38; 계 22:11-12).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모든 말과 행동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판단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14. 2. 17. 소년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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