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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fbc16
제목 ‘말씀 보존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에 대하여
작성일자 2016-03-02
조회수 2216
‘말씀 보존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에 대하여 (Concerning the Clear Promise of God for the Permanent Preservation of His Pure Words)
 
- 시편 12:1-8 / 다윗의 호소와 하나님의 약속 -
 
 
I. 들어가는 말
 
o 하나님의 말씀은 에덴동산에서 마귀에 의해 공격받은 이후(창 3:1-6) 지금까지 계속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말씀이신 예수님(요 1:1; 계 19:13)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이 땅에서는 이러한 공격은 계속될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그 말씀을 왜곡, 변질시키거나 성경에서 삭제하는 것이 사탄의 주된 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cf. 고후 4:3-4)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는 성경의 많은 말씀들 중에서 시편 12:6-7절은 가장 강력한 약속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이 약속의 말씀을 싫어하여 예전부터 자유주의자들, 심지어 소위 근본주의 진영의 사람들까지 동원하여 공격하게 하였다(*어떤 이유에서든 성경기록을 공격하는 사람은 이미 근본주의 신자가 아니다).
o 시편 12:6-7절에 관한 논쟁을 접할 때마다 미국의 어느 신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 경험했던 일이 생각난다. 한 교수님이 자신의 과목(고린도 전후서)을 강의하던 중 시편 12:6-7절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분의 강의 요지는, 시편 12:7절의 대명사 "them"(그것들)은 히브리어로 남성형이므로 6절의 여성형인 “주의 말씀들”(the words of the LORD)을 가리킬 수 없고 대신 남성격인 1절의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과 신실할 자들이라는 것이었다. 그 때 그분은 자신의 히브리어 지식을 근거로 ‘히브리 문법상으로 주님께서 보존하시는 대상이 ‘주의 말씀’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단언하였다. 그분은 그후에 학교에서 문제가 되어 어떤 이유에서인지 결국 교수직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을 들었다(후에 그러한 주장이 자신의 완전하지 않은 히브리어실력과 잘못된 히브리어 문법지식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으로 보임. 그의 전공은 성경언어가 아니었고 히브리어 교수도 아니었음.).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도 그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히브리어 성경을 연구하다가 그 사실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번역은 보존의 방법이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킹 제임스 성경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제기한 문제를 다시 들고 나온 것이 틀림없다. 예를 들어, 유대인의 70인역[Septuagint]이나, 아랍역[the Arabic] 등과 같은 역본들은 마치 보존대상이 ‘말씀’이 아니라 ‘사람’인 것처럼 킹 제임스 성경의 “them”(그것들) 대신 ‘us’(우리들)로 번역한 성경들이 있다.
 
o 과연 이러한 주장이 맞는가? 먼저 6-7절을 다루기 전에 먼저 시편 12편 전체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II. 시편 12편의 구조와 내용 요약
 
o 시편 12편은 상호 대칭구조로 되어있다. 경건한자(the godly man)와 신실한 자들(the faithful) 대(對) 사람의 자녀들(the children fo men = 비열한자들 the vilest, 사악한자들 the wicked, 우쭐대는 자 one that puffeth at him), 그리고 ‘그들의 헛된 말’과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이 서로 대칭된 구조로 되어있다.
 
전체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1절)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절박한 요청
o ‘하나님을 따르는 자’(단수. the godly man)는 이 시편의 기자인 다윗(David)을, ‘신실한 자들’(the faithful)은 하나님을 따르는 신자들의 무리 혹은 공동체를 가리킨다. 다윗은 자신을 포함하여 자신이 소속된 신자들의 공동체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호소하고 있다. 만약 시편기자의 부르짖음처럼 의로운 자들이 소멸된다면, 하나님께서 전에 이미 경건한 자들에게 약속해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것이 될 것이다(창 12:1-3, 사 10:20 남을 자들 곧 야곱의 남은 자들).
 
(2-4절) 사람들의 자녀들(불경건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
o 시편기자 다윗은 사람들의 자녀들 곧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자기 이웃과 더불어 헛것(vanity)을 말하고,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고 있다고 외치고 있다. 여기서 다윗은 그 악한 사람들이 그들의 입술과 혀와 두 마음으로 말하는 것(speak, v.3 / said. v.4)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악한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주님께서 그런 악한 사람들의 아첨하는 모든 입술, 교만한 것들을 말하는 모든 혀를 끊어버리실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v.3). 그러나 여전히 악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혀로 [경건한 사람들을] 이긴다고 우쭐대며 교만해하고 있다.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누가 우리를 주관하리요?”(직역: 누가 우리의 주인이냐? →우리 인생은 우리가 주인이고, 우리의 입술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 마음대로 우리 인생을 살겠다!). 이것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반역적인 태도(시 14:1, 53:1)며, 주 하나님을 부정하는 태도다(시 14:3).
 
(5절) 그와 관련된 하나님의 약속
o 본 시편의 기자인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다. 다윗은 가난한 자가 학대받고 궁핍한 자가 탄식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우쭐대는 자들로부터 그[경건한 자]를 떼어내 안전하게 두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5절 말씀은 1절에서 시편기자(=경건한자)가 하나님께 도와주실 것을 절박하게 구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혀로 이긴다고 우쭐대는 사람들(v.4)을 대항하여 하나님께서 일어나실 것이라는 것을 계시 받은 것이다(시 9:19). 이것은 물리적으로 위험에 처한 경건한 자를 육체적으로도 건져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이다.
 
(6-7절) 악한 사람들의 악한 말들에 대한 하나님의 대책
o 하나님께서 도우시겠다는 내용은, 악한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험한 말들에 대응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악한 사람들의 말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응하셨다. 조금 전 5절에서 경건한 사람들을 건져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보증으로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그 약속의 말씀이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시켜주신 것이다(신 30:11-14). 악한 자들은 그들이 하는 말들이 이길 것이라는 것 곧 자신의 말들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교만에 찬 주장을 하고 있지만(v.4), 오히려 주님께서는 사람의 말들이 아니고 오직 그분의 말씀만이 하나도 빠짐없이 영원히 보존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v.6-7).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銀) 같은 말이 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만이 순수하고 완전한 말씀이다(잠 30:5-6). 고대에는 도가니에서 일곱 번 정제하는 과정을 통해 100% 순수한 은(銀)을 얻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금속의 정제과정을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은(銀) 정제과정이 하나님의 말씀의 질(質)에 관한 가장 적당한 예화로 채택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시편기자 다윗이 외치는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v.7).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분명하게 약속하신 말씀을 누가 무너뜨릴 수 있는가? 주님의 모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반드시 성취된다.
 
(8절) 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지를 인식함.
o 다윗은 자신이 처한 때가 하나님의 도우심이 왜 필요한 때인지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비열한 자들이 높여지고 악한 자들이 사방에서 활보하고 있는 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열하고 사악한 자들은 자신들의 혀와 입술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다(v.4).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만이 인간의 거짓말을 맞대응할 수 있다. 대언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과 인간의 불완전한 말들 중에 어느 것이 굳게 서게 될 것인지 예언을 하였다(렘 44:28-29). 예수님께서는 친히 예수님 자신이 하신 말씀에 대하여 강력한 보증을 하셨다.“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III. 시편 12:6-7절 해설
 
o 시편 12:6-7절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문법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일반적인 히브리어 문법이 아니라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에서 특별하게 적용된 성경의 히브리어의 용법을 말한다). 히브리어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히브리어 문법에 관련된 성경적인 현상(現象, the Biblical phenomenon)이 있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이 현상은 여성형 명사 선행사가 대명사를 취할 때는 남성형을 취하는 현상이다.
 
♠ 성경 속에 있는 현상(The Biblical Phenomenon)
o 구약 히브리어 성경을 신중하게 해석하려면 다음의 성경 현상(the biblical phenomenon)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 기록자들은 성경에서 다양하게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들’(예. 시편 119편)이 히브리어 문법상으로 여성형 명사들과 동의어일 때, 이 여성형인 ‘하나님의 말씀들’을 선행명사로 받는 대명사는 여성형 대신 남성형 대명사를 취하였다. 곧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들은 비록 히브리어 문법상으로 여성형이라도 히브리인 조상들의 강력한 하나님을 확장하여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구약성경의 기록자들은 종종 다음과 같은 단어들 곧 법, 증언, 명령, 법규, 말씀 등을 받는 대명사는 자주 남성형 대명사를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히브리어 단어 ‘법’(Law, 토라), ‘증언’(Testimony), ‘명령’(Commandment), ‘법규’(Statute), 그리고 ‘말씀’(Word)은 히브리어 문법상 여성형이다. 히브리 문법의 패턴은 선행명사와 그것을 받는 대명사는 성(性)과 수(數)가 일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남성형 단수(m.s.) 명사는 남성형 단수 대명사를 취하고, 남성형 복수(m.p.) 명사는 남성형 복수 대명사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성경 기록자는 어떤 특별한 진리들을 강조하려는 신학적인 목적을 위하여 이와 같은 통상적인 문법의 틀에서 벗어나서 기록하였다(The biblical writers deviated from this "grammatical norm" for theological purposes, emphasizing specific truths.). 성경을 기록할 때 사용된 언어들(히브리어, 아람어 그리고 헬라어)의 유일한 권위는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기록이다! 이와 같은 성경 속의 히브리어의 한 현상 곧 신학적인 목적에 따라 성(性)의 불일치 현상을 밝혀주는 실례들이 구약성경을 구성하는 세 파트인 율법서, 성문서, 시가서 모두에 나와 있다.
 
(1) 율법(Law, torah)
① 수 1:7(all the law는 여성 단수, turn not from it의 it은 남성 단수).
② 시 78:5(한 증언, a testimony, 한 법 a law는 여성 단수, 이 두 단수 명사를 받는 대명사 them(lehodiy`am)은 남성 복수 대명접미사).
 
(2) 증언(Testimony, `eduth)
① 시 78:5 (위 참조)
② 시 119:111(주의 증언들 testimonies는 여성 복수, 그것들 they는 남성 복수).
③ 시 119:129(증언들 testimonies는 여성 복수, 그것들 them은 남성 복수 대명접미사).
④ 시 119:152(증언들 testimonies는 여성 복수, 그것들 them은 남성 복수 대명접미사).
⑤ 시 119:167(증언들 testimonies는 여성 복수, 그것들 them은 남성 복수 대명접미사).
 
(3)명령(Commandment, mitzwah)
① 레 22:31(내 명령들 commandments는 여성 복수, 그것들 them은 남성 복수).
② 레 26:3(내 법규들 statutes는 여성 복수, 내 명령들 commandments도 여성 복수, 그것들 them은 남성 복수 ).
③ 민 15:39(모든 명령들 commandments는 여성 복수, 그것들 them은 남성 복수).
④ 왕상 6:12(내 법규들 statutes은 여성 복수, 내 법도 judgments는 남성 복수, 내 명령들 commandments는 여성 복수, 그것들 them은 남성 복수 대명접미사).
 
(4) 법규(Statute, chuqqah)
① 레 20:8(내 법규들 statutes는 여성 복수, 그것들 them은 남성 복수).
② 레 26:3 (위 참조).
③ 왕상 6:12 (위 참조).
④ 겔 5:6(내 법도들, judgments는 남성 복수, 내 법규들 statutes는 여성 복수, 그것들them은 남성 복수 대명접미사).
⑤ 겔 18:19(내 법규들 statutes는 여성 복수, 그것들 them은 남성 복수).
⑥ 겔 37:24(내 법도들 judgments는 남성 복수, 내 법규들 my statutes는 여성 복수, 그것들 them은 남성 복수)
 
(5) 말씀(Word, ’imrah)
①시 12:6-7(주의 말씀들 words는 여성 복수, 순수한 말씀들 words도 여성 복수,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의 그것들 them은 남성 복수 접미사 m.p. suffix, “그것들을 ... 보존하시리이다”의 그것들 them도 남성 복수 접미사 m.p. suffix)
 
♠ 시편 기자는 악한 자들의 위협과 험악한 말들 가운데 있는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도움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들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과 전혀 질이 다르다. 시편기자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그 말씀은 완전히 순수한 말씀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인 흙 도가니에서 일곱 번 정제한 100% 순수한 은(銀)에 비유한 것이다.
 
여기 7절에서 사용된 동사들과 대명사의 접미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동사 ‘지키다’(keep)와 ‘보존하다’(preserve)의 주어는 주 하나님이시다. 첫 동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다”(keep them, tishmerem)의 가장 가까운 선행사는 당연히 6절의 “말씀들”(words)이다. 그러나 여기서 히브리어 “말씀들”(words)은 복수 여성형이지만 히브리어 동사의 접미사 곧 “그것들”(them)은 남성형 복수이다. 이와 같은 성의 불일치는 위에서 예시들을 살펴본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다른 시편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성경의 한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잘 못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성경적인 것이고 정상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시편 119편에서 시편기자는 의도적으로 성경 속에 나타나신 히브리인들의 조상으로 강조된 하나님을 나타내는 동사의 확장형을 남성화하였다(Ps. 119, the psalmist deliberately masculinized the verbal extension of the patriarchal God of scripture.). 이러한 현상은 구약 성경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것으로서 시편을 해석하려는 사람은 이러한 성(性)의 불일치 사례의 배경과 목적 그리고 현상을 잘 이해해야 한다. 더욱이, 시편 119편의 사례들이 밝혀준 것처럼 성(性)을 일치시킬 목적으로 대명사가 가리키는 선행 명사를 가장 가까운 명사에서 먼 명사로 옮기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이러한 성의 불일치로 기록된 시편 119:111절(“내가 주의 증언들을 영원히 유산으로 삼았사오니 그것들은 내 마음의 기쁨이니이다.”)에서 대명사 “그것들”(them, *남성형)의 선행사를 바로 직전의 것인 “주의 증언들”(*여성형)을 가리키는 선행사 법을 어기고, 성(性)을 일치시킬 목적으로 해당절인 111절을 떠나 110절의 남성형 “사악한 자들”(the wicked)이라고 주장하면 시편 기자는 ’‘사악한 자들은 내 마음의 기쁨이니이다.’라고 하는 이상한 해석이 된다. 시편기자는 겉으로는 의로운 하나님을 찾으면서 마음속으로는 사악한 자들을 기뻐하는 위선자인가?
다시 119:129절에서 만약 성(性)의 일치를 무조건 적용하려고 하면 “그것들”(them)의 선행사인 같은 절의 여성복수명사인 “증언들”(testimonies) 대신에 남성명사인 128절의 “훈계들”(precepts)로 해석해야 하는 무리를 범한다. 우스운 해석이다(물론, 의미상으로 증언들이나 훈계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동의어들이지만). 또 119:152절을 보면, 시편기자는 “주께서 ‘그것들’(them)을 영원히 세우셨음을 내가 옛적부터 알았나이다”라고 고백하였는데 여기서 성(性, gender)을 일치시켜야 한다면 남성형 “그것들”(them)은 무엇을 선행사로 받아야 하는가? 여기서 같은 152절의 “증언들”(testimonies)은 여성명사이고 남성 복수형 분사(masculine plural participle)는 150절의 “주의 법에서 멀리 떨어진 자들”(they that follow after mischief)인데 어느 것이 되어야 하는가? 그러면 ‘주께서 주의 법에서 멀리 떨어진 자들을 영원히 세우셨음을 내가 옛적부터 알았나이다’가 될 수밖에 없어서 하나님의 신성을 공격하는 해석이 되고 만다. 끝으로, 119:167절(“내혼이 주의 증언들을 지켰사오며 내가 그것들을 지극히 사랑하나이다.”)에서 시편기자가 “지극히”(exceedingly) 사랑하는 남성형 “그것들”(them)은 무엇인가? 같은 절의 여성형 명사인 “주의 증언들”(thy testimonies)인가, 아니면 복수 남성형 분사인 165절의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들”(they which love)인가?
 
전체 히브리어 구약성경에서 대명사는 그것의 가장 근접한 선행명사와 일치하고 성수(性數, gender/number)도 일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여성형 동의어들(예. 증언, 명령, 법규, 판단, 말씀 등)은 이스라엘 족장의 하나님을 남성격으로 표한하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에 따라 남성형 대명사를 취하는 성경의 특별한 현상이 있다. 이럴 경우에는 근접선행사가 대명사의 성(性)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진리가 있다. 시편 12:7절 “thou shalt preserve them”에서 동사 히브리어 ‘보존하다’(preserve)가 취한 남성 단수 대명접미사(masculine singular pronominal suffix, titztzerennu) “them”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 하나(the individual Words)를 가리킨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preserve them'의 'them'에 “히브리어로 him: 즉 그것들의 각각 (Heb. him: i.e., everyone of them)”이라는 각주를 달아놓았다. 히브리어에는 중성 대명사 ‘그것’(it)이 없기 때문에 영어 대명사 “그것들”(them)에 붙어있는 각주 ‘그’(him)는 6절의 하나님의 말씀들(=그것들, them)의 개별적인 말씀 하나 하나(every individual word)를 가리키는 것이다. 시편 12:7절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에서 첫 번째 동사 ‘지키다’(keep)는 주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모든 말씀들’(all the Words)을 가리키는 것이고, 두 번째 동사 ‘보존하다’(preserve)는 주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각각의 모든 말씀’(every word of God, 눅 4:4; 마 4:4)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세대를 위하여 그분의 모든 말씀과 그리고 그분의 모든 말씀의 각각의 단어까지 보존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모든 세대, 각각의 세대는 기록된 정경(正經)의 모든 말씀들(곧 구약과 신약성경)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거절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심판하는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말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He that rejecteth me, and receiveth not my words, hath one that judgeth him: the word that I have spoken, the same shall judge him in the last day.) (요 12:48).
 
 
▣ 결론과 정리
 
o 결론적으로, 시편 12:7절의 “그것들”(them)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1절의 ‘경건한 자’와 ‘신실한 자들’이 아니라 6절의 “주의 말씀들”이다.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도 아무도 논박할 수 없도록 시편 12:7절이 6절의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고 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경건한 자들, 신실한 자들 곧 주님의 성도들을 보존하신다(cf. 시 97:10 “주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악을 미워하라. 그분께서 자신의 성도들의 혼을 보존하시며 사악한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지시느니라.”).
o 대부분의 언어에는 성수(性數)의 일치법이 있다. 구약 성경을 기록하는데 사용된 히브리어에도 성수는 일치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세상 사람들이 정해놓은 언어규칙에 지배받지 않는다. 그렇게 세상의 언어법에 반드시 통제받아야 한다면 더 이상 전지전능하시고 온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다. 때로는 세상의 언어법과 규칙을 초월한다. 지금까지 다루어 본 구약 히브리어 성경에 나타난 특수한 이런 현상도 이 경우 중의 하나이다. 성수 불일치의 경우 외에도 성경에는 세상의 언어법을 초월한 경우가 제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삼위일체의 진리를 기록한 경우는 성경 기록은 정상적인 문법의 틀에서 벗어난다. 창 1:26절에서 “하나님”(God)은 문법상 단수다. 그러나 그 단수 하나님이 같은 절에서 복수인 ‘우리가’(us)로 표기되었다. 창세기 11:6절의 단수인 “주”(the LORD)가 7절에서는 복수형 “우리”(us)로 기록되었다. 세상의 어법상으로는 맞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치리자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기록한 성경기록도 세상의 어법을 벗어나 있다(요 3:7 “내가 네게(thee) 이르기를, 너희가(Ye)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thee는 단수대명사, ye는 복수대명사).
꼭 어문법이 아니더라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준이나 법을 초월하는 경우가 있고 인간의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없는 말씀들이 많이 있다. 이 점이 오히려 사람의 책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거룩한 책이라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거룩한 책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결코 자신의 학식이나 지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재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누구나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면 할수록, 더욱이 원본 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성경을 공부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의 무변광대(無邊廣大)하심과 그분 말씀의 심오(深奧)함과 위대(偉大)함을 깨닫고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시편 12:6-7절이나 성경의 다른 말씀들을 자신의 성경언어지식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자신들의 언행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순진한 성도들을 얼마나 실족하게 하는 것인지 두려운 마음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훼손하는 죄의 값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지 두려운 마음이 든다.
동시에 이런 사람들의 주장을 접하는 정직한 성경 신자들은 그러한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그는 마땅히 알아야 할 바를 아직 전혀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8:2)
 
“그런즉 스스로 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할지니라.”(고전 10:12)
 
“또 그의 모든 서신에서도 이것들에 관해 그 안에서 말하였으되 그 안에서 깨닫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므로 배우지 못하여 불안정한 자들이 다른 성경 기록들과 같이 그것들도 왜곡하다가 스스로 파멸에 이르느니라. /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들을 미리 알았은즉 저 사악한 자의 오류에 이끌려 너희도 너희 자신의 굳건함에서 떨어지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벧후 3:16-17)
 
o 사람들의 왜곡된 말들은 거짓말이고 동시에 유한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영원히 존재한다.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 다윗을 비롯한 경건하고 신실한 모든 자들을 악한 자들로부터 떼어내 안전하게 지켜주신다는 약속은 무엇으로 보증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 다윗과 그와 같은 신실한 자들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보장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악에서 지켜주시겠다고 하신 그 말씀 곧 그 말씀 전체와 심지어 그 말씀들의 단어 하나하나까지도 모두 완전히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는가? 속성상 유한하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은 자신의 입으로 아무리 화려한 말을 해도 그것을 보장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말씀을 보장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결코 헛되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경건하고 신실한 모든 자들의 안전에 대한 보증 그 자체이다. 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과 같이 완전하며 반드시 성취된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되리라.”(마 5:18).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와 거기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움이 돋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그것이 씨 뿌리는 자에게 씨를 주고 먹는 자에게 빵을 주게 하는 것 같이 / 내 입에서 나가는 내 말도 그러하여 그것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내가 기뻐하는 것을 이루며 내가 그 말을 보내어 이루게 하려는 일에서 형통하리니”(사 55:10-11).
 
o 하나님께서는 무엇으로 스스로 의롭게 되시고 무엇으로 세상과 악을 이기실 수 있는가? 바울 사도는 하나님 자신의 말씀들 안에서 그렇게 하신다고 계시해 주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들의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무효로 만들겠느냐? /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이것은 기록된 바, 이로써 주께서 주의 말씀하신 것에서 의롭게 되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시리이다, 함과 같으니라.”(롬 3:3-4)
 
예수님께서도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시하셨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지만, 이미 구약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시어 “기록된바” (it is written, 마 4:4, 7, 10... )라고 강조하셨다. [참고로, “기록된바”(it is written)는 신구약 성경 전체에 약 80회가 나온다. 구약에도 여호수아 8:31절을 비롯하여 17번 나오고 신약은 마태복음 2:4절을 비롯하여 63회 나온다. 과거형으로 된 “it was written”은 11번 기록되어 있다]. 또 대화를 나누시거나 가르치실 때 이미 기록된 성경말씀을 가리켜 “너희가 읽어보지 못했느냐?”(마 12:3, 5, 19:5, 21:16, 42, 22:31; 막 2:25, 12:10, 26; 눅 6:3)하고 말씀하셨다. 모두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보존을 약속하신 성경말씀을 언급하신 것이다.
 
o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 하나 하나를 하나님께서 그 세대로부터 영원한 세대까지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 이 사실이 모든 세대를 걸쳐 의로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실체적인 도움이며 영원한 소망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무엇이 믿는 자들의 소망이 되는가? 바로 시편기자가 약속을 받은 영원토록 지속되는 하나님께서 보존해주신 말씀이 아닌가? 이것이 시편 12편의 주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참으로 고난 중에 즉시 만날 도움이시라”(God is our refuge and strength, a very present help in trouble.) (시 46:1)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라. 풀은 마르고 그것의 꽃은 떨어지되 / 오직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지속되나니 복음으로 너희에게 선포한 말씀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4-25)
 
♣참고: The Permanent Preservation of God's Words: Psalm 12:6-7 Expanded (Article, Dr. Thomas M. Strouse)
 
                                                                                                      (2013. 12.  Boy Shephe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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