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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fbc16
제목 우리가 킹 제임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이유
작성일자 2016-03-02
조회수 2256
우리가 킹 제임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이유


I. 많은 성경들
• 우리 믿음과 행위의 기초
우리의 믿음과 행위의 기초는 무엇인가? 교회의 전통인가? 설교인가? 기독교 서적인가? 성경공부 교재인가? 성경 말씀 자체인가? 아니면 성경 말씀으로 가공된 어떤 것인가?
• 예견된 공격
(시 11:3) “기초들이 무너지면 의로운 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으리요”
대적이 기초를 공격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 사람들이 성경이슈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이유: 줄거리 신앙 vs 성경 신앙
     긍정적 이유: 지식 위주의 신앙을 거부한다. 형식보단 본질(사랑)에 충실하고자 한다
     부정적 이유: 줄거리만 맞으면 된다(줄거리 신앙 = 줄거리 위주, 메시지 위주, 교훈 위주). 성경이슈에 빠지게 되면 기득권을 잃게 된다. 성도들에게 혼란을 주고 싶지 않다.
• 우리 선조들과 우리가 처한 상황은 좀 다르다.
과거에는 성경 자체를 구하기 어려웠다. 과거에는 여러 종류의 성경으로 혼란을 겪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현재(20세기 이후)는 많은 성경이 등장했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우리 조상들은 겪지 않았던 싸움을 싸워야 하는 처지에 있게 되었다.
•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성경 홍수의 시대
한글: 개역성경, 개역개정판, 표준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외 다수
영어: KJV, NKJV, NIV, NASV, TEV 외 다수
•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성경 선택의 기준)
 - 사람들이 제일 많이 쓰는 걸로
 - 유명한 신학 박사와 목사들이 혹은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 추천하는 걸로
 - 읽기 쉬운 것으로
 -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증거가 분명한 것으로
• 이렇게 많은 성경이 있는 이유
 - 기존 성경의 언어나 표현이 구식이라 현대인들에게 맞는 쉬운 성경을 내느라
 - 기존 성경의 틀린 부분과 문제점을 바로 잡아 내느라
 - 독자의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 돈벌이가 되니까 // 대적의 활동

II. 성경 보존에 관하여
•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가?
구원을 어떻게 받는가? -> 믿음을 통해(엡 2:8,9) -> 믿음은 어디서 나는가? -> 하나님의 말씀에서(롬 10:17) ->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 있는가? -> 성경 기록들(딤전 3:15)에 -> 지금 그 하나님의 말씀(성경 기록들)이 우리에게 있는가?
 1. 한 때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 기독교인으로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2. 불완전하게 남아있다. ->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성경 기록의 보존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으시거나 성경 기록을 보존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는가?
 3. 완전하게 남아있다. -> 어디에 있는가? 하늘에? 하나님의 마음속에? 성경 기록 속에?       성경 기록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있다면 어느 성경인가? 원문 성경인가?
• 성경 보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성경 기록들)을 보존하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성취하셨다.
 1. 약속 - 시 12:6~7; 시 78:1~8; 시 105:8; 시 119:89,111,152,160; 잠 22:20~21(기록하는 이유 – 말씀들의 확실함 알림); 전 3:14; 마 4:4(기록된 말씀으로 산다); 마 5:17~18; 마 24:35(신약도 없어지지 않음); 요 10:35(the scripture cannot be broken); 골 1:17(consist); 벧전 1:23~25(영원히 지속되는 말씀);
마태복음 24:35에서 주님은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Heaven and earth shall pass away)” 무엇이 하늘과 땅만큼 굳건할 수 있겠는가? 지진이 일어나도 땅은 여전히 건재하지 않은가? 하지만 주 예수님께서는 그 하늘과 땅이 없어질 것이라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과 불신자들을 보라. 그들은 땅을 당연히 있는 것으로 여긴다(우리 모두도 그렇다). 현재 그 위를 걷고 있으며 걸을 때 땅이 무너지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처럼 땅은 견고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현재 있는 하늘과 땅이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들은 계속될 것이다. 그들은 하늘에 영원히 정착되었다. 그들은 보존된 말씀들이다. 그러므로 없어질 하늘과 땅보다 더 보존되고 더 정착해 있으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2. 약속의 성취 - 왕상 8:24(솔로몬); 롬 4:20-21(아브라함); 딛 1:2(거짓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히 10:23(신실하신 하나님)

• 성경이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 말씀 -> 기록 -> 보존(원문 필사 및 번역)
원본은 의미 없다: 성경보존은 원본의 보존이 아님(렘 36:27,28). 원본도 결국 베껴 쓰기
성경은 보관용 책이 아니다: 박물관에 있는 책이 아닌 성도들이 사용함으로써 낡아짐
번역이 필요하다: 바벨탑 사건 이후 다양한 언어가 생김. 복음이 이방인에게 넘어오면서 필사의 형식에서 번역의 형식으로 보존의 방식이 바뀜. 모든 사람에게 성경이 읽힐 수 있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어야 함.

III. 왜 킹 제임스 성경인가?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 요약)
“이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기 때문이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내가 지혜로운 주건축자로서 기초(원문)를 놓았고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세우되(번역자) 저마다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기법-기술,신학-재료) 주의할지니라. 이는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고전 3:9~11)
 1. 원문이 뛰어나다
   킹 제임스 성경과 현대 번역본들은 번역의 기초가 다르다.
  A. 구약: 전통 마소라 히브리어 본문 – 벤카임 마소라 본문(다니엘 봄베르그판, 제2랍비             성경) VS 키텔의 히브리어 성경
“대부분의 히브리어과(히브리어를 가르치는 단과대학, 종합대학, 신학교)에서 벤 카임 히브리어 본문 대신 벤 아세르 히브리어 본문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들이 신약에서 전통 그리스어 본문 대신 비평 그리스어 본문을 쓰는 이유와 같다. 즉, 히브리어든 그리스어든 "가장 오래된" 본문이 항상 최고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B"(바티칸 본문)와 "Aleph"(시내산 본문)과 같이 소위 "오래된" 신약 본문들과 그와 관련된 43개의 문서들은, 내가 믿기로는, 신약 성경이 기록된 이후 100년 사이에 있던 이단들에 의해 오염된 것들이다. 따라서 그것들이 가장 오래(old)되었을지라도 이단들의 손을 거쳤으므로 최고(best)는 아닌 것이다. 반대로 비록 훗날 기록된 본문이라도 원문에 충실하다면 그것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 킹제임스 성경은 이렇게 원문에 충실한 본문들을 따르고 있다.”
* 구약의 권위를 인정하신 예수님 - 마 4:4; 마 5:17-18(율법, 대언자); 눅 24:27(모세,대언자); 눅 24:44(율법,대언자,시)
“다른 선택은 없는가? 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킹제임스 성경이 번역의 모체가 되는 다니엘 봄베르그판 마소라 히브리어 본문을 받아들지 않는다면 어떤가 하는 말이다. 다른 선택은 말 그대로 다른 기초를 수용하는 것이다. 그럼 어떤 다른 것을 기초로 받아들이겠는가? 한 때(1906, 1912) 킹제임스성경과 같은 본문적 기초를 가지고 있었지만 1937년에 다른 히브리어 본문으로 개정되어 폐물이 되어 버린 키텔의 Biblia Hebraica(BHK)를 쓰려는가? 아니면 키텔성경을 기반으로 개정된 1967/77년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BHS)를 쓰려는가? BHK 나 BHS 중에서도 페이지 상단에 있는 불완전한 히브리어 본문을 기초로 사용하려는가 아니면 그 아래 2만에서 3만 군데에 달하는 변경내용을 담은 각주를 기초로 삼으려는가? 각주를 쓰겠다면 어느 각주를 말하는가? NKJV가 사용했던 부분인가? NASV가 사용했던 부분인가? 아니면 NIV가 사용했던 부분인가? 전부 다 가져다 쓰려는가? 아니면 25%? 아니면 50%? 아니면 아예 무엇이 구약성경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드러누울 것인가? 결국 “히브리어 구약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어. 그러니 모두가 미심쩍을 수 밖에 없지”라는 입장을 취하려는가? 이 모든 혼란의 장본인은 사탄이다. 사탄은 이런 거짓 의혹의 우두머리이다. 기준을 놓치게 되면 의심이 바다에서 표류할 수 밖에 없다. 수년 동안 교회에 출석했지만 정작 주님을 알지 못하는 젊은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 “올바른 히브리어 구약 본문에 대해서는 신학자들과 목사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고 언쟁이 끊이지 않는데 나라고 별 수 있겠는가? 난 포기했다” 마귀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이런 혼란과 의심을 씨앗을 심을 수만 있다면 그는 승자가 되는 것이다.
이 주제에 관한 오랜 연구와 심사숙고와 기도 끝에 나는 개인적으로 이 전통 마소라 히브리어 본문에 관한 한 한 치도 양보도 있을 수 없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B. 신약
수용(공인) 본문 – 베자 5판 성경 VS 네슬/알랑(웨스트코트와 호르트) 본문(5,000군데 이상의 차이)
(1)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되는 수용 본문은 교회(the churches)가 받아들인 본문
(2)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되는 수용 본문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있다.
<교리와는 상관없다는 주장에 대해>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본문에 좀 빠진 것이 있긴 하지만 주된 교리는 그것과 연관이 없습니다.” 과연 그럴까? 주된 교리가 연관되어 있다.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특정 구절에서 교리 하나를 빼 먹었다 해도 신약 다른 곳에서 그 교리를 다시 발견할 수 있지 않습니까?” 글쎄, 100가지 다른 구절에서 그 교리를 남아 있다고 한들 빠진 곳에 있는데 어떻게 온전하다고 하겠는가? 불완전하고 결함 있는 그리스어 본문과 그 기초 위에 결함투성이의 영어 번역본이 있을 뿐이다.

<초기 이단들이 오염시킨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본문>
이단들이 왜 성경의 전부가 아닌 일부만 손을 대었는지 아는가? 이단들은 성경을 자기 편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런데 성경이 기록된 후 초기 100년 동안의 번성했던 이단들은 신약의 모든 책을 갖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신약 전체를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빼고 바꾸고 짜맞출 수 없었다. 그저 자기들이 갖고 있는 책에 한해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러한 이단의 난도질을 피한 책들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라도 빠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온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100%가 아니라면 몇 개 정도 빠져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한 개 정도? 그 정도면 적어도 내겐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5,600군데 이상, 10,000개가 넘는 단어라면 문제는 심각해 지는 것이다.

<수용 본문의 현실>
사실 변개 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1881년까지 수용 본문이 거의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고 사용되어왔다. 즉 거의 1800여년 동안 교회는 수용 본문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을 저버렸다. 1800년 동안 지속되어 온 어떤 것이 갑자기 오늘 좋지 않은 것이 되어 버렸다. 오늘날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인의 교회가 지지했던 이 수용 본문을 믿는다고 하면 무시당하거나 못 배운 사람으로 인식된다. 네슬/알랑 본문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뭔가 잘못된 사람이란 인식이 있는 것이다.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수용 본문의 교회사적 증거>
그리스정교, 현대 그리스교회까지
 
<수용 본문의 사본학적 증거>
현재 우리 손에 있는 5,225개 신약 사본들의 99% 이상이 웨스트코트-호르트 본문이나 네슬/알랑 본문이 아닌 수용 본문과 일치한다. 5,255개의 문서 중 겨우 45개의 문서, 전체의 1%도 안 되는 증거만이 그들의 본문과 일치한다.
 
사본과 Aleph사본의 진실>
웨스트코트 호르트의 사람들이 의지하고 있는 두 가지 비중 있는 사본이 있는데 바로 B 와 Aleph 사본이다. B는 바티칸 사본이고 Aleph은 시내 사본이다. 이 두 사본이 4세기 엉셜 사본이라는 추측이 있는데 당시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사본의 소유자는 그것이 이단들의 손에 훼손되고 더럽혀진 타락한 본문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웨스트코트 호르트가 그 추종자들이 B와 Aleph사본을 최고라고 치켜 세운다. 이 두 사본이 가장 오래되었고 그 결과 가장 순수하다고 논리에서이다. 하지만 이 둘은 최고도 아니고 순수하지도 않다. 이단들이 오염시킨 본문이다. 그들이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두 사본에 보관에 적합한 기후를 가진 이집트에 있었고 둘째 이단들이 변개한 사실을 안 교회가 두 사본을 아예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가 핍박 당하고 책들이 불태워질 때 장롱 속에 고이 보관되어 있던 두 사본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던 것이다. 두 사본은 사용되었다면 분명 지금 내 성경처럼 많이 닮아 너덜 너덜해 졌을 것이다.

2. 번역자들이 뛰어나다
A. 킹 제임스 번역자들의 성경과 번역에 대한 자세
“진리가 없이 어떻게 경건이 있겠으며 하나님의 말씀 없이 어떻게 진리(구원하는 진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성경기록이 없이 어떻게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겠는가? 우리는 성경기록을 탐구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요 5:39; 사 8:20). 성경기록을 탐구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칭찬을 받고(행 17:11 그리고 8:29-29) 성경기록에 미숙하거나 성경기록을 더디 믿는 사람들은 책망을 받았다(마 22:29, 눅 24:25). 성경기록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도록 지혜롭게 할 수 있다(딤후 3:15). 우리가 무지하다면 성경이 우리를 가르칠 것이고 우리가 그 길에서 벗어나 있다면 성경이 우리는 집으로 인도할 것이며 우리가 흐트러져 있다면 성경이 우리를 바로 잡을 것이다. 근심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위로를 주며 무디어진 우리에게 자극을 주며 냉랭해진 우리에게 불을 당겨주는 것이 성경 기록이다.”
“번역이란 창문을 열고 빛을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이 일은 껍질을 까서 열매를 먹는 것과 같고 휘장을 젖히고 지성소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번역은 야곱이 우물 입구의 돌을 굴러내고 물을 길어 그것으로 라반의 양떼들에게 물을 주었던 것(창 29:10)처럼 우물의 뚜껑을 열고 물을 긷는 것이다. 알기 쉬운 말로 번역이 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 없이 (깊은) 야곱의 우물가에 서 있는 아이와 같을 것이고 이사야서의 봉인된 책을 앞에 둔 사람과 같을 것이다.”

B. 킹 제임스 번역자들의 신앙적 배경: 영국 국교회 및 청교도
 
C. 킹 제임스 번역자들의 학문
“John Bois는 5살 때 히브리어로 성경을 읽었다. 오늘날 어떤 사람이 이 정도의 배경과 능력을 갖추고 있겠는가? 당시 킹 제임스 역자들과 오늘날 학자들 간의 차이는 거인국의 거인과 소인국의 소인들만큼이나 큰 것이었다. 필자를 화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킹 제임스 성경을 조롱하며 이 귀한 책에 온갖 나쁜 수식어 - 구식이다, 한 물 갔다. 부적합하다, 열등하다 - 를 갖다 붙이는 것이다 그들은 킹 제임스 역자들이 자기 시대 학자들보다 못하며 현대 학문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이다. 우리야 말로 그들이 가졌던 학문적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현대 역본 번역자 중 다섯 살 때부터 성경을 읽어온 사람이 있는 지 물어보라! 아마도 5살에는 성경은커녕 읽는 것 자체가 안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질문에 이 단어도 덧붙여 보라 – “히브리어로”. 대답은 고사하고 오히려 묻는 당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볼지 모른다.”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그리고 기타 동방 언어에 능통했던 William Bedwell은 지금의 현대 역본 번역자들보다 월등했다. 많은 현대의 “번역자”들은 단어 하나를 만나며 보통 어딘가에 붙어 있는 각주와 또 페이지 하단의 목록을 기웃거리다가 이 히브리어 단어는 뜻은 분명치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다른 식으로 번역한다. NASV가 나왔던 1960년 사람들도 NIV가 나왔던 1969년 사람들도 NKJV가 나왔던 1979년 사람들도 이 단어의 뜻을 모르기는 매 한가지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킹제임스 역자들은 이런 동족 언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단어들을 이해했고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를 대부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런대도 사람들은 킹 제임스 번역자들의 신빙성과 우수성과 지식수준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족 언어는 말 그대로 히브리어와 관련된 동일한 계열의 언어를 말한다. 동족 언어에는 아랍어, 페르시아어, 시리아어, 아람어, 콥트어 등이 있다. 그들은 형제자매처럼 서로 관련되어 있다.”
 
“번역자들의 능력이나 번역이 이루어진 시기를 살펴보면서 다시 한 번 나는 참으로 이 일이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느낀다. 영어라는 언어가 완성기에 접어든 시기였고 그리스어와 동방 언어 및 랍비 학문에 대한 유례없이 활발한 연구가 영국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 이러한 내용을 읽어본 독자들은 이 같은 위대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현존하는[A.D.1857년 기준] 영국과 미국의 모든 대학을 통틀어 보아도 이만한 수의 이만한 학식을 갖춘 이만한 경건을 가진 신학자들을 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교만한 이 시대에 이러한 거성들과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 킹 제임스 번역자들 만큼 우리에게 확신과 신뢰를 줄 만한 사람들을 어디서 찾아 볼 수 있겠는가? 모든 교단과 기독교 진영 모두를 뒤져 찾아본다고 할지라도 그만한 번역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고의 역량과 자질 갖춘 신학자들이 함께 이루어 낸 작품을 어찌 각지에서 몰려든 어설픈 학자들과 몰락한 목사들과 단순한 신도들의 합작품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자기들의 작품이 ‘개량되고’ ‘개선되고’ ‘교정을 거친’ ‘믿을만한’ 재번역이라고 자랑하고 다니며 ‘American and Foreign Bible Unions’라는 것을 만들어 이 건방진 성과물을 출판하고 있다. 이런 천박한 모험가들이 앞서 되짚어 본대로 그런 덕망 있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과 어찌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는가! 신흥 역본주의자들(versionist)이 아무리 우쭐대고 기세 등등 하더라도 그들은 이런 고대 학문의 대가들의 꼬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새파란 친구들이 Andrews 나 Reynolds, Ward, Bois가 원문 성경의 의미에 대해 주석들을 비교하고 있는 동안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 땜장이들이 손볼 수 있는 쇠붙이가 있고 장인의 손길이 필요한 쇠붙이가 있는 것이다. 어떻게 땜장이에게 성소의 금 그릇을 맡기겠는가? 그들이 그것을 아무렇게나 땜질하도록 어찌 내버려 두겠는가?… ”
 
3. 번역방법이 뛰어나다
A. 팀 단위 번역의 우수성
1) 웨스트민스터, 옥스퍼드, 캠브리지 3개 그룹, 6개조(각 그룹 신구약), 총 57명
2) 모든 번역자들이 직접 번역에 참여
3) 3중 검토(조 내부, 조별, 최종 팀)
 
“킹제임스 역자들이 사용한 팀 작업 기술은 현대 역본 번역자들이 사용한 방법과 전혀 달랐다. 각 번역자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 맡겨진 책(1조의 경우 12권)을 모두 번역해야 했다. 그것도 히브리어로 된 어려운 책들을 말이다. 1조는 창세기에서 열왕기하까지, 옥스퍼드 그룹은 이사야에서 말라기까지 번역했다. 개개의 번역자들은 손수 히브리어를 영어로, 그것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번역해야 했다.
NASV, NIV, NKJV를 번역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자질이 없었다. 그저 겉포장만 그럴 듯 했을 뿐이다. 물론 현대 역본 번역 위원회에는 학위 있는 사람들과 박식한 ‘학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해당 역본의 구입을 부추기는 홍보위원에 불과했다. 출판사는 돈을 벌기 위해 그들을 필요로 했다. 그들 중 몇몇은 책의 앞이나 뒷장에 추천사를 써놓고 이렇게 광고했다 “아무개 박사도 이 역본을 훌륭한 번역본으로 보고 있습니다.”. 무슨 역본이든 현대 역본의 번역위원회는 사실상 번역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이 모두 직접 번역에 참여하는 경우는 없었다. 혹 이를 반박할 만한 자료나 문서가 여러분에게 있다면 한 번 보여달라. 필자는 틀린 말을 한 것이 아니다. 전체 중 실제로 번역을 한 “학자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반대로 킹제임스 역자들은 각자가 최고의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었고 자기 번역을 마친 후에도 같이 모여 최종 번역을 결정하는 작업을 했었다.
원 본문은 먼저 7번의 번역작업을 거치고 모여서 1번 더 검토되고 다른 조들로 넘어가 5번 더 손을 거친다. 그들은 번역본을 교환했다. 이것은 팀 단위로 이루어진 노력이었다. 따라서 번역작업은 개인이 7번, 그룹이 1번, 다른 그룹들이 1번씩 5번 이렇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그룹에서 2명씩, 여섯 개 그룹에서 차출된 12명이 최종 교정을 보고 작업을 마무리했다. 각 책은 최소한 14번 이상의 철저한 번역을 거쳤다. 우리가 아는 한 이는 정말 이례적인 것이며 전무후무한 팀 단위 작업 방법이다. 그 우수성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제임스 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제임스 왕(제임스 왕의 이름을 따 킹 제임스 성경이라고 불림)의 흠이라고 알려진 것들을 물고 늘어지길 좋아한다. 제임스 왕은 여러 모로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번역 자체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번역의 필요를 인정하고 번역 자체만을 지시했을 뿐이었다.”

B. 번역 기법의 우수성
1) 킹 제임스 번역자들은 문자적 일치 곧 형식적 번역 기법을 채택했다.
2) 킹 제임스 번역자들은 동적 일치 번역(의역) 방식을 거부하였다.
“킹제임스 역자들은 채택한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 기법은 그리스어나 히브리어 단어를 가능한 한 그대로 살려 영어로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문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영어에는 동사가 있고 형용사, 전치사, 분사 등도 있다. 히브리어 문장을 그 구조와 형태를 유지한 채로 영어로 옮길 수 있으면 킹 제임스 역자들은 그렇게 했다. 가령 동사가 있으면 그것을 명사나 다른 품사로 바꾸지 않고 동사로 옮겼다. 영어에는 변형 생성 문법(Transformational Grammar)이란 분야가 있는데 이 문법에서는 하나 형태에서 다른 하나로 바뀔 때 모든 것이 바뀐다. 바로 여기에는 소위 동적 일치라는 것이 나왔다.. 동적 일치는 영어(혹은 다른 언어)로 넘어올 때 본래의 단어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방법이 우수한 것은 이런 동적 일치 기법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문자적(혹은 형식적)일치 기법이기 때문이다.”
 
3) 동적 일치 번역 방식의 정체
- 마귀의 삭제, 변경, 첨가의 법칙(창 3:1~5)
“번역 일을 한 지[그녀는 방글라데시에 있으며 벵골성경을 번역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우리는 상당한 좌절감을 맛보았다. 성경이 여러 부분을 조정하면서도[그녀가 말하고 있는 이 “조정들(adjustments)”은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 더하고 바꾸는 일들 말한다.] 마음 한 편으로는 끊임없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문을 너무 자유롭게 번역하고 있는 건 아닐까?’[그들이 하고 있는 일들로 인해 양심이 움직인 것이다.]. 내 동료는 특별히 계시록 22:18,19의 경고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 동적 일치대로 한다면 어떤 본문을 쓰든 마찬가지이다.
“그럼 동적일치와 본문의 관계를 알아보자. 앞서 밝혔듯이 킹제임스 성경은 가장 정확하고 알맞은 구약 히브리어 본문과 신약 그리스어 본문을 사용한다. 가장 좋은 본문은 원 본문의 단어나 형식이 고스란히 영어로 옮겨질 때 그 의미를 갖는다. 즉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의 형태로 번역될 때 좋은 본문이 살아나는 것이다. 하지만 번역시 동적 일치 기법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일단 동적일치에서는 본문에 있는 단어나 본문간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든지 원할 때 바꿀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입맛에 맞게 더할 수도 있고 뺄 수도 있으며 바꿀 수도 있다. 여기서 본문의 종류가 무슨 의미를 갖겠으며 그것이 정확하든 그렇지 않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번역자가 누구면 어떻겠으며 그 자질을 따질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고 빼고 바꾸는데 무슨 학위나 교육이 필요하겠는가? 사탄이 그렇게 했으니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동적일치기법으로 번역하는데 누가 올바른 본문에 신경 쓰겠으며 올바른 번역자를 구하겠는가? 그저 마음대로 바꾸는 일만 남은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 역본의 현실이다. 슬픈 현실이다. 그들은 마소라 본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시리아 역본이나 70인역, 라틴 벌게이트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가정과 추측만 있으면 된다. 본문은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입맛에 맞는 대로 사용하면 된다. 자 보시다시피 동적 일치 문제는 우리가 앞서 논의했던 본문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가 킹 제임스 성경을 우리의 표준으로 삼는 것은 킹 제임스 성경이 우수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그것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동적일치기법을 거부했기에 가능했다.”

- 번역과 의역의 차이
“번역은 [1] 최대한 많은 원문의 내용이 [2] 가능한 한 적은 단어로 [3] 하지만 원문의 분위기와 강조점을 유지한 채 표현되어야 한다. [4]번역자는 힘써 가장 근접한 단어와 [6] 개념과 [6] 억양을 찾아내야 하며 양심에 따라 본문에 필요하지 않은 [7] 단어나 [8]사상을 더해서는 안 된다[동적일치를 사용하는 자들은 이렇게 한다. 그들은 본문과 상관없는 단어나 사상을 추가시킨다.]. [8]번역자는 뜻을 넓히거나 [9] 설명해서는 안되며 오로지 [10]옮김으로 [11]원문의 영과 힘을 보존해야 한다. [12]필요하면 현대 구어체를 포기하고서라도 그렇게 해야 하며 이로써 [13] 명확한 번역이 나올 수 있다…. 물론 [14]기존의 바른 번역 성경에 있는 단어나 구절들을 좀더 손봐서 얻는 이로움도 있다. 하지만 [15]그런 작업은 주석이지 [16]번역이 아니다. [17]번역은 하나님 말씀의 원문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다. [18]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이지 [19]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박사들의 해석이나 견해가 아니다. [20] 이 둘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이런 차이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땅을 침범하는 자가 된다.”
 
- 성경이 동적일치 방식을 금한다: 더하기(신 4:2; 신 12:32; 잠 30:6; 계 22:18), 빼기(신 4:2; 신 12:32; 렘 26:2), 바꾸기(신 5:32-33; 신 17:18~20; 신 28:13-14; 수 1:7-8; 왕하 22:2)
- 성경은 “사상이나 관념, 신조”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들(words, 단어들)”의 중요시 한다
사 55:10; 렘 15:16; 렘 23:36; 암 8:11-12; 욥 19:23-24; 시 12:6-7; 시 119:89; 신 8:3; 마 4:4; 막 10:38; 눅 9:26; 마 24:35; 갈 3:16
 
4. 교리가 뛰어나다
“현대번역본들을 쓴다고 해도 교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해…
 a. 현대 번역본들에 대한 잘못된 말들
“의미에 영향을 주는 부분은 400군데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실제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구절은 50개이다. 그렇다고 이 50개로 인해 우리의 믿는 바가 바뀌거나 의무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이외에 많은 명확한 구절들이 있고 또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필립 샤프, ‘그리스어 신약과 영어 역본 입문’ 중에서)
 “주목할 만은 것은 이 모든 표준 번역들이 매우 충실하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눈 여겨 볼 것은 여러 의심스러운 번역들이 논란이 되고 있고 까다로운 구절들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 어떤 것[논란이 되고 있는 번역내용]도 하나님 말씀의 핵심적인 교리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피어슨 박사, ‘성경 번역들’ 중에서)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여전히 킹 제임스 성경을 고수하고 있고 성경 연구에 필요한 주석의 하나로 개역본[the REVISED, 즉, 1881년의 영어 개역본(RV) 또는 1901년의 ASV를 가리킨다]을 사용한다. 덧붙여 최근 역본이라도 근본적인 교리가 바뀐 것은 조금도 없다는 것을 일러두고 싶다.”(탤보트 박사, ‘성경 번역들’ 중에서)
“번역본들 간의 차이는 극히 미미하며 사소한 것들이다. 결국 우리는 오늘날 번역본들에서 교리 하나, 사건 하나, 명령 하나, 권면 하나 빠진 것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존.R.라이스 박사, ‘성경 번역들’ 중에서)
b. 교리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몇 가지 실례
 - 신론(요일 5:7,8)
 - 교회론(계 2:15) 개역: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내가 그것을 미워하노라”(which thing I hate)가 누락되었음.
  - 사탄론(눅 4:8)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get thee behind me, Satan)이 눅락        되었음.
  - 성경론: 막 16:9-20절 전체 괄호, 요 7:53~8:11전체 괄호, 막 13:14(개역: 멸망의 가        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spoken of by Daniel the prophet,이 빠져 있음/        다니엘이 저자이며 대언자임), 벧후 3:2(개역: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우리’        가 ‘너희’ 혹은 ‘그들’되 되어있음/ 베드로의 저자됨, 사도됨 의심), 눅 4:4(‘하나님의        모든 말씀’ 빠져있음), 요 17:17(그냥 ‘진리’와 ‘Thy truth’), 마 27:34(개역: 쓸개 탄        포도주, ‘식초’가 ‘포도주’로 둔갑, 시 69:21 예언의 정확한 성취를 흐림), 마 27:35         (개역: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나머지 부분         이 없음, 시 22:18의 성취를 가림)
  - 종말론: 마 25:13(‘사람의 아들이 오는’ 삭제), 골 3:6(‘불순종의 자녀들’이 빠짐. 심판        의 대상이 누구?), 롬 14:10(‘그리스도’의 심판석, vs ‘하나님의 심판석’), 막 3:29(영        원한 ‘형벌’ vs 영원한 ‘죄’), 벧후 2:17(‘영원히’가 빠짐, 지옥의 영워넝 가림), 히           10:34(‘하늘에’가 빠짐), 계 16:17(‘하늘의’가 빠짐, 성전의 위치)
  - 구원론: 계 21:24(개역: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        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구원받은 자들의’가 빠짐, 구원받은 사람들에 국한하지 않          음), 딤전 6:19(개역: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vs ‘영생을 붙듬’), 롬 5:1(개역: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골 1:14(‘그분의 피를 통하여’가 빠짐)
  - 그리스도론: 고전 11:24(‘부서진’이 빠짐), 고전 11:29(‘합당치 않게’가 빠짐), 딤전           3:16(‘하나님’ vs ‘그’), 요일 4:3(‘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이 빠짐), 요 1:18(‘God’        이냐 ‘Son’이냐?), 계 1:11(‘알파, 오메가, 처음, 나중’이 없음)
 
IV. 바른 성경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 안으로
 - 줄거리가 아닌 정녕 성경 말씀에 기초한 신앙을 갖게 된다.
 
 -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지 않으시는 신실함 분임을 인정하게 된다.
 -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전케 된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된다.(성경은 단순한 복음 전도지가 아니다).
“또 어린아이 때부터 네가 성경 기록들을 알았기 때문이니 그것들은 능히 너를 지혜롭게 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 3:14~16)
 - 순수한 말씀으로 건강하게 자라게 된다(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이로써 건전한 교리, 건전한 생각이 나온다. 말씀이 온전하지 않을 때 우리는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게 된다. 누가 아기에게 중금속, 유전자 조작으로 가득한 음식을 먹이겠는가?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여 이 젖으로 자라가도록 하라”(벧전 2:2)
• 밖으로
 - 성경을 두고 벌어지는 영적 전쟁의 실체를 인식하고 깨어 대비하게 된다.
  * 오늘날 성경은 사탄의 가장 효과적인 공격 대상이다.
  * 오늘날 각종 이단과 뉴에이지 운동의 배후에는 성경이 있다. 그들은 그들의 성경으로 그들의 교리를 주장한다. 현대 역본은 건전한 교리를 믿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훌륭한 피난처(빌미 제공)가 된다. 바른 말씀만이 이를 물리칠 수 있다.
  * 줄거리에 기초한 신앙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공격 앞에 무너질 수 있다(엡 4:14).
 - 우리가 킹 제임스 성경을 믿는 이유에 대해 묻는 자들에게 할 말이 있다.
• 성경 보존에 대한 우리의 믿음
 - 우리는 킹 제임스 성경을 믿는다(X)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O)
 - 우리는 현 시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킹제임스 안에 보존되었음을 믿는다(O)
 
                                                <출처: 산본 성경의 교회>
 
 
한자 속에 나타난 성경

미국 병리학자 E. R. Nelson 박사는 한자의 기원에 창세기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을 발견, 연구시작. 한자의 발생기원은 B.C.2500 경으로 알려져 있고, 4500 년 동안 변함없이 보존되어오고 있음. 유교와 도교가 중국에 성행한 시기는 B.C. 5세기, 불교가 중국에 소개된 것은 B.C. 1 세기경 (67년) 임. 공자, 노자, 석가의 가르침이 있기전인 B.C. 500년 이전의 종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음. 고대 중국인들은 미신보다 유일신인 하나님을 섬겼다는 증거들이 도처에서 발견되며, 하나님을 '하늘 위에 계신 통치자 = 상제 (上帝, 샹다이, Shangdai)' 라고 부르고 모심. 이것은 창17:1)과 시91:1)의 전능하신 하나님(샤다이, Shaddai)과 원어상의 발음이 비슷.

중국에도 구전으로 내려오는 대홍수 이야기가 있는데 자신들은 이를 극복한 '누아'의 자손으로 믿고 있음 (노아와 발음이 비슷). 몽고, 중국, 극동 아시아 쪽으로 이동해온 인종은 메소포타미아 근처에서 이동해온 인종임. 이들 중 일부는 황하유역에 정착하여 한족의 조상이 되었고 일부는 만주와 한반도까지 들어왔음. 이들은 한자를 만들때 자신들의 섬겼던 상제와 조상들의 이야기를 담았을 것이 분명함. 아담은 므두셀라때까지 살아 있었으며, 므두셀라는 셈의 때까지, 셈은 바벨탑사건 이후 400년을 더 살았기 때문에 사실상 천지창조, 노아의 홍수사건, 바벨탑 사건까지 거의 전부를 후손들에게 구전으로 전해줄 수 있었을 것임. 다음의 한자들에 담겨져 있는 창세기의 내용이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1. 船 (배 선) : 인류 최초의 거대한 배(舟)인 노아의 방주에는 8명(八)의 사람(口)이 탔음.
2. 造 (지을 조) : 흙(土)에 생기( ' )를 불어넣으니 사람(口)이 되어 걸어다님(造). (창2 :7).
3. 田 (밭 전) : 네 개의 강(+)이 흐르는 동산(口). 에덴동산 (창2 :10~14).
4. 男 (사내 남) : 에덴동산(田)에서 쫓겨나 힘쓰고 수고해야(力) 되는 사람.
5. 女 (계집 여) : 첫 번째(一) 사람(人)의 갈비뼈 하나를 빼내서( ' ) 만든 사람. (창2:21~22).
6. 兄 (형 형) : 말하는(口) 사람(人). 가족을 대변하여 하나님께 말하는(예배드리는)자. 장자권자.
7. 兇 (흉악할 흉) : 형(兄)인 가인이 저주를 받아 표(×)를 받게 됨. 터진 입이 되어 가족의 대변자의 위치를 상실함을 의미.
8. 鬼 (귀신 귀) : 에덴동산(田)에서 사람(人)에게 은밀히 활동하는 것.
9. 魔 (마귀 마) :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林) 사이에서 뱀으로 위장되어 있는 귀신(鬼).
10. 生 (날 생) : 수평의 3 획은 하늘, 땅, 바다를 상징. 八은 생기를 뜻함.
11. 品 (물품 품) : 세 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진 것.
12. 替 (대신 체) : 성부와 성자의 두 분(夫, 夫)을 대신하여 말하시는(曰) 분(요14:16,17). 그 분은 성령님.
13. 示 (보일 시) : 제물을 차려놓는 제단을 본뜬 모양. 하나님은 본래 보이지 않는 분이나 사람에게 나타나시길 원하시는 분임. 하늘위에서는 한 분, 하늘아래에서는 세 분을 나타냄. 하나님을 나타내는 부수가 됨.
14. 禁 (금할 금) : 하나님(示)께서 두 나무(林)에 대해 명하신 것.
15. 婪 (탐할 람) : 두 나무(林)를 바라보는 여자(女)의 마음.
16. 神 (하나님 신) : 示(하나님, 계시하다) + 申(펴다, 말하다).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하신 분.
17. 祝 (빌 축) : 형(兄)이 하나님(示)께 부탁하는 것.
18. 祈 (기도할 기) : 하나님(示)앞에서 두 손을 도끼날처럼 모아들고(斤) 행위.
19. 祭 (제사할 제) : 제단(示)위에 고기(祭=肉)를 손(手)으로 잡아드리는 것.
20. 祥 (상서로울 상, 복 상)) : 하나님(示)에게 양(羊)을 드리는 것.
21. 祀 (제사 사) : 오전 9~11시(사시, 巳時)에 하나님(示)을 뵙는 행사.
22. 祖 (조상 조) : 하나님(示)과 같은 모습(且, 같을 차)이었던 사람.
23. 福 (복 복) : 하나님(示)과 첫(一) 사람(口)이 에덴동산(田)에서 사는 상태.
24. 先 (먼저 선) : 흙(土)에 생기(八)를 불어넣어 된 처음 사람(人).
25. 火 (불 화) : 사람(人) 주변에서 나던 영광스런 광채(火).
26. 榮 (영화 영) : 빛을 발하는 두 사람(火火)이 선악과나무(木)와 격리되어(冥) 있을 때의 상태.
27. 仁 (어질 인) :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 두(二) 사람(人)의 성품.
28. 西 (서녁 서) : 최초의(一) 사람(人)이 살던 동산(口)있던 방향. 에덴동산은 중국 사람들에게는 서쪽이었음.
29. 要 (요긴할 요) : 최초의(一) 사람(人)이 있던 동산(口)에서의 여자(女).
30. 肉 (몸 육) : 아담의 몸(同)에 손을 넣으셔서(入) 한사람(人)을 만듦.
31. 元 (시작 원) : 아담과 하와 두(二) 사람(人)으로 부터 인류는 시작됨.
32. 僉 (모두 첨) : 지구상의 인구는 모두 합쳐(僉) 두 명(口口,人人)이었음.
33. 完 (완전 완) : 두(二) 사람(人)을 만들어 가정(집, 完)을 이루게 하심으로 모든 창조행위를 마치심.
34. 裸 (벗을 라) : 금단의 열매(果)를 따먹고 벗은 줄을 알게 되어 옷(衣)을 입게 됨.
35. 始 (비로서 시) : 여자(女)가 남모르게 먹음으로(口) (죄, 비극이) 시작됨.
36. 初 (처음 초) :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衣)을 입히기 위해 양에게 칼(刀)을 댐. 이는 우리의 죄를 위해 피를 흘려야하는 예수님을 예표하는 첫 사건.
37. 園 (동산 원) : 흙(土)으로 만든 어진 두(人人) 사람(口)이 있던 울타리(口).
38. 來 (올 래) : 선악과를 따먹은 후 나무(木)사이에 숨어있던 두 사람(人人)이 나옴.
39. 衣 (옷 의) : 범죄한 두 사람(人人)을 덮어주는 것.
40. 義 (옳을 의) : 손(手)으로 양(羊)을 쳐서(戈) 드림. 나(我)의 죄를 위해 양(羊)을 드리는 것.
41. 犧 (희생 희) : 흠없는(秀) 소(牛)와 양(羊)을 찌르는(戈) 것.
42. 水 (물 수) : 수평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수직으로 떨어짐을 묘사. 대홍수 사실이 내포됨.
43. 洪 (홍수 홍) : 노아의 8식구(八)가 함께 손잡고(共) 치러낸 물난리.
44. 沿 (물따라 내려갈 연) : 여덟(八) 사람(人)이 물(沿)위에 떠있는 것.
45. 穴 (굴 혈) : 여덟(八) 사람에게 지붕(穴)을 삼고 거쳐했던 곳.
46. 空 (빌 공) : 동굴(穴)에 있는 사람들이 일하러(工) 나갔을 때의 상태.
47. 舌 (혀 설) : 바벨탑 사건 후 천(千)가지 소리(口)를 내게 됨.
48. 合 (합할 합) : 모든 사람(人)들이 한(一) 언어(口)를 사용.
49. 塔 (탑 탑) : 사람들(人)의 언어(口)가 하나(一)일대 흙(土)으로 쌓은 것으로 후에 잡초(草)만 남게 됨. 바벨탑의 건설과 저주를 의미.
50. 遷 (옮길 천) : 서쪽(西, 바벨탑이 있던 시날땅)에 큰(大) 분산(印)이 있어서 이동하게(運) 됨.
51. 血 (피 혈) : 그릇(皿)에 담겨 하나님께 드리는 생명( ' ).
52. 楚 (쓰라릴 초) : 하나님이 금하신 나무(林)의 열매를 따먹음(疋,조각)으로 시작된 것.
    (참고 사이트: http://wonderfuldesign.com)
 
 
 
 
 
 
 
 
 
 
권위와 권능
C. H. 메킨토시

만약 교회사 가운데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로에 대한 하나님의 권위와 그 행로를 뒤따르는 하나님의 권능을 갖는 것이 절대로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의견의 대립과 불일치와 학파의 대립과 분파 간의 논쟁이 있으며, 그 결과 우리는 지금 모든 면에서 균형을 잃고 알지 못하는 곳으로 끌려가는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한 동일한 문제에 있어서 단일한 눈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일에서 유일한 권위로 간주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잘 해 나갈 수 있을까요? 인간의 의견이라는 폭풍우 치는 대양의 사나운 동요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작은 배가 정박할 수 있는 평화로운 항구는 없을까요? 감사하게도 그러한 항구는 있습니다. 독자는 바로 이 순간 그 항구에 닻을 내리는 깊은 복됨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행로에 대한 하나님의 권위와 그 행로를 뒤따르는 하나님의 권능과, 지위에 대한 권위와 그 지위를 차지하는 권능과, 사역에 대한 권위와 그 사역을 수행하는 권능을 갖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한 갓난아이인 순전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달콤한 특권입니다.

권위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어디에 있나요?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발견됩니다. 권능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발견됩니다. 각자는 모두 자신들의 행로의 안정과 마음의 기쁨을 얻기 위하여 반드시 권위를 알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신앙 고백한 그리스도인들의 현재의 상태를 깊이 생각할 때, 우리는 극히 소수만이 개인의 일, 가정의 일, 사업상의 일, 교회에 관한 일 등, 모든 일에서 그리고 모든 점에 관해서 성경을 보려 한다는 매우 안타까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혼의 구원에 관한 문제점이 해결되어야 할 경우에도, 문제점을 해결하기는커녕, 슬프게도 사람들은 성경의 신성한 영역으로부터 마음대로 벗어나서 각자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택하며 스스로 행동하는 인간의 의견과 인간의 뜻이라는 난폭한 대양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이제 가장 확실한 사실은 인간의 의견. 인간의 뜻, 인간의 판단이 있는 곳에서는 권위의 그림자는 없으며 권능은 조금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견은 양심에 대하여 어떠한 권위도 없으며, 영혼에 어떠한 권능도 주지 못합니다. 인간의 의견이 약간의 가치는 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어떠한 권위나 권능도 없습니다. 나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임재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만약 나의 양심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 무엇인가가 끼어들면, 내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며, 어디로 방향을 돌려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나의 마음과 하나님의 임재 사이에 무엇이 끼어들면 나는 완전히 무능합니다. 주님의 말씀만이 나의 유일한 안내자입니다. 그분께서 내 안에 거주하시며 나와 함께 하시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권능입니다. "내가 네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네가 어디로 가든지 주 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기 때문이니라"(수 1:9)

독자는 아마도 이렇게 물을지 모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삶의 모든 상세한 문제에 대한 충분한 지침이 있습니까? 예를 들면 주님의 날에 내가 어디로 가야하며, 월요일부터 토요일 밤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내게 말씀해 줍니까? 나의 개인적 행로, 가족 관계, 사업, 종교적 교제 및 견해에 대해 지도해 줍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으로 하여금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합니다. 어떠한 일도 만약 당신을 구비시키지 못하는 것은 선한 것이 아니라 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주일날 가는 곳에서 권위를 발견할 수 없다면, 어떠한 곳이든지 즉시 가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월요일에 하는 일에서 권위를 발견할 수 없다면, 즉시 그만 두어야 합니다.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정직하게 성경을 보도록 합시다. 모든 일에서 성경의 거룩한 권위에 복종합시다. 겸손하게 그리고 경건하게 하늘에 속한 성경의 안내에 자신을 맡깁시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또는 누가 인가한 것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는 직접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분의 임재하심을 누릴 수 없는 것이라면, 모든 버릇과 습관과 교제를 버리십시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참으로 모든 일에서 성경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완전히 복종해야 하는 중요성에 대하여 인간의 말로써 설득력 있게 적절한 용어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을 다루는데 있어서 가장 큰 실제적인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모든 일에 있어서 성경을 따르려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려고 하거나, 오직 성경에서만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신조, 신앙고백, 종교 의식서, 명령, 교리, 사람의 전통과 같은 것들을 따르거나 그러한 것들에 복종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의지, 자신의 판단, 자신의 견해에 지배를 받으려고 합니다. 편의주의, 지위, 명성, 개인적 영향, 유능함, 친구의 의견, 선하고 위대한 사람들의 사상과 본, 우리가 사랑하고 존중하며, 종교적 삶과 섬김에서 오랫동안 교제해 온 사람들을 성나게 하거나 몹시 슬프게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주제넘은 자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우리가 자진해서 복종하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상황을 피하려고 애쓰는 이러한 모든 것들은 혼에 역사하여 매우 해로운 영향을 미치며, 최고 권위인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는 것을 방해합니다.

바라옵건대 주님께서 이 중요한 주제와 관련하여 은혜롭게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기를!
바라옵건대 주님께서 성령에 의해 우리를 인도하사 그분의 말씀의 참된 지위와 실제적인 가치와 권능을 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바라옵건대 그 말씀을 모든 것을 포함한 한 규칙으로 우리의 혼 안에 세워 주셔서 어떠한 것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것은 주저하지 않고 완전히 거절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그때에 우리는 진보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며, 우리의 행로는 완전한 날을 더욱 더 비추는 빛나는 빛과 같은 의인의 행로가 될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우리의 모든 습관과 모든 길과 모든 교제와 모든 종교적 지위 및 섬김과 모든 행하는 것과 모든 행하지 않는 것과 가는 곳과 가지 않는 곳과 관련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인가를 받았으며 그분의 임재의 빛을 가지고 있다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결코 만족하며 안식하지 않기를!

오직 여기에 권위와 권능의 깊고 보배로운 비밀이 있습니다.
 
                                             <출처: 산본 교회>
 
 
 
 
 
 
 
 
                                영감과 번역
                               Bruce Lackey
전제 : 어떤 성경 역본이 만일 부패하지 않은 사본으로부터 '바르게 번역된 역본'이라면, 그 역본을『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칭하는 것은 옳다.
1. 디모데후서 3:15-17에서 바울은 디모데가 소유한 성경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성경이 '영감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2. 디모데는 자필원본을 갖지 않았으며 단지 필사본만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구약성경의 그리스어 역본을 가졌을 가능성도 꽤 크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는 그리스인이였고, 그는 데베 또는 루스드라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 곳은 분명히 그리스어가 통용되던 곳이었다. 신약 성경에 인용된 인용 구절들은 모두 히브리어 자필 원본의 사본이나 또는 그리스어 역본을 가리킨다. 그 당시에는 아무도 자필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3. 디모데가 소유했던 성경은 "거룩한 것"이라 불렸다. '거룩한'은 '다른', '구별된' 등을 뜻한다. 그 성경은 하나님께서 시편 12:6-7, 시편 100:5 및 기타 다른 여러 곳에서 약속하신 바와 같이 '영감 받고 보존되었다'는 의미에서 "구별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다른 고대 문서도 그와 같은 주장을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어떤 문서도 "거룩한" 것이라 할 수 없다.
4. 히브리서 1:8 과 10:5는 매우 권위 있게 그리스어 역본 구약성경에서 인용하고 있다.
5. 히브리서 3:7은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이 구절은 히브리어가 아닌 그리스어였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이 말씀을 70인역(Septuagint)에서 인용하였든지 혹은 자신이 번역하였든지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 구절을 그리스어로 기록하면서, 성령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담대하게 단언했다는 사실이다. 왜 거기에 히브리어를 삽입하지 않았을까? 분명히 번역본도 정확하게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곳(즉 성경)으로 일컬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히브리서 9:8, 10:15도 동일하다.
6. 단지 자필원본만 영감을 받았다면, 아무도 영감 받은 성경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누구도 마태복음 4:4 의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을 순종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자필원본을 가진 자만이 이 구절에 순종할 수 있게 하셨던가? 혹은 히브리말이나 그리스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만이 이 구절에 순종하게 하셨을까? 지각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이에 대한 답변은 명백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구절을 만드셨을 때,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 구절을 되풀이하여 말씀하셨을 때, 과연 그분께서 성경이 여러 번 필사되고 번역될 것을 모르셨겠는가? 만일 자필원본만 영감을 받았다면, 우리가 디모데후서 4:2의 "너는 말씀을 선포하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없으며 계시록 22:18-19 말씀, 즉 성경에에 첨가하거나 삭제하는 것에 관한 경고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다. 또한 가르침을 받아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는" 유익을 얻을 수 없다(딤후 3:16-17).
7. 부패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우리에게 구원이 있을 수 없다. 베드로전서 1:23-25는 우리가 살아있고 영원히 거하는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났다고 가르치며, 또 "복음으로 너희에게 전한 말씀이 이것이니라"고 말씀한다. 그들이 들었던 바...말씀이 이것이니라(THIS IS THE WORD....)라는 구절에 유의하기 바란다. 그들은 아마도 자필원본에서 들은 것이 아니라 복사본이거나 번역본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이 '하나님의 썩지 아니할 말씀'으로 다시 났다고 말했다.
8. 부패하지 않은 원본에서 번역된 것이라면, 그리고 정확하게 번역되었다면 어떠한 성경도, 어떠한 번역본도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다고 본다. 바티칸 사본에 있는 많은 구절들도 TR에 있는 구절들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그런 경우에 그것들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거부해야 하는 부분은 다름이 아니고 성경기록이 변개된 곳이다. 마찬가지로 요한복음 1:1은 KJV와 NASV가 정확하게 같다. 우리는 단순히 어떤 구절이 발견된 책이나 또는 사본에 기초해서 그 구절을 정죄할 수 없다. 문제는 그 구절이 정확한가 아닌가 이다.
<반대 의견에 대한 답변>
반대 1 : 이탤릭체 단어도 영감을 받았는가?
답변 1 : KJV 만이 이탤릭체 단어를 사용한 유일한 번역본은 아니다. 몇몇 다른 역본도 KJV와 같이 이탤릭체를 사용한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단어 대 단어의 번역은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이탤릭체로 된) 단어를 삽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어는 자주 동사를 생략하지만, 그리스어 문법의 법칙에 따르면 이는 완전하고 정확한 것이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이렇게 하면 어색한 문장이 될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이해하는데 매우 방해가 될 것이다. 한 예를 들자면, 디모데후서 3:16의 "is"는 이탤릭체이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히 필요하지 않은가?
이탤릭체 단어를 일치하게 만든 역본은 없다. 예를 들자면, 디모데후서에서 KJV은 "is"를 이탤릭체로 사용한다. 왜냐하면 "IS"에 대한 그리스어 동의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given by"에 대한 그리스어 동의어도 없다. NASV는 베드로전서 2:8에서 "doom"을 이탤릭체 단어로 사용하지만 "because"는 이탤릭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만약 삽입하는 단어가 정확하다면 단어의 삽입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해를 위하여 필요하다.
마태복음 4:4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구약의 신명기 8:3의 그리스어 역본을 인용하셨다. 히브리어에서 번역된 KJV는 "word"를 이탤릭체로 보여주는데, 이는 번역자가 첨가하였음을 가리킨다. 그들은 이같이 첨가하는데 완전하고 정확했다. 왜냐하면 이 단어를 첨가하지 않고서는 영어에서 명확하게 의미가 전달될 수 없기 때문이다. 히브리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자도 "word"를 추가했다(그리스어로 로고스). 그리스도께서 인용하심으로 입증된 바와 같이, 그들도 역시 정확했다! 또한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러므로 의심할 바 없이 바른 역본과 그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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